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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www.dongascience.com/osd/viewhottrend.asp?no=13396

        2005년 1월호

빛보다 빠른 것은 없을까 (공개기사)

과학동아 2005년 1월        김성원/이화여대 과학교육과 교수
특 수상대성이론과 일반상대성이론이라는 말은 아인슈타인과 동급으로 취급될 만큼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만약 이 이론들이 무슨 뜻이냐고 묻는다면 선뜻 대답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이제 이런 질문을 던져보자. 세상에서 제일 빠른 것이 있는가? 만약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우주의 최대 속도를 찾아서

우주에서 최대 속도를 갖는 물질은 빛이다.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은 이를 전제로 한다.
‘세 상에서 가장 빠른 것’을 물리적으로 표현하면 ‘우주상에서 최대 속도를 갖는 물질’이다. 이에 대한 답은 있다, 없다 둘 중 하나다. 만약 최대 속도가 없다고 하자. 그렇다면 그 속도를 능가하는 또 다른 속도가 존재할 것이다. 무한의 속도가 존재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하지만 무한의 속도라는 개념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속도는 수학적으로 공간의 변화를 시간의 변화로 나눈 것이기 때문에 무한의 속도라는 것은 공간의 변화가 무한하든지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는 뜻이 된다.

고전역학의 창시자 뉴턴도 이 문제를 고민했다. 그는 두 물체 사이에 작용하는 만유인력 개념을 도입하면서 만유인력이 작용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전혀 없다고 가정하고 무한의 속도 개념을 도입했다. 하지만 실제로 만유인력이 작용하는 두 물체 사이에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고 해서 이 물체들이 무한한 속도로 움직이지는 않는다.
공간의 변화가 무한할 수 없고, 시간이 아예 흐르지 않는다고 가정해도 모순이 생긴다면 속도가 무진장 커질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우주상에는 최대 속도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또 최대 속도는 관측자에 따라서 달라져서도 안된다. 관측자에 관계없이 일정해야 한다. 만일 일정하지 않다면 최대 속도가 아니다. 그보다 큰 속도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결론이 또 도출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최대 속도를 갖는 ‘그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이미 최대 속도를 갖는 ‘그것’이 빛이라고 알고 있다. 그런데 왜 하필 빛이어야 하는가?
17세기부터 과학자들은 빛의 속도를 측정했다. 1675년 뢰머는 목성둘레를 공전하는 한 위성에서 일어나는 식을 이용해 위성의 공전주기를 측정하다가 목성의 위치가 지구에서 가장 가까울 때가 가장 멀 때보다 식이 일어나는 시각이 약 20분 빠르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빛이 일정한 속도를 갖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고 생각하고 상당히 정확하게 빛의 속도를 계산했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은 뢰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50년 뒤 브래들리 역시 지구에서 별을 관측할 때 계절에 따라 위치가 조금씩 다르다는 사실을 통해 빛의 속도를 계산했다. 이후 1849년 피조가 광원에서 나온 빛이 톱니 사이의 틈을 지나 거울에 갔다가 반사될 때까지 빛이 왕복하는 시간을 측정해 빛의 속도를 계산했다. 하지만 빛의 속도가 관측자에 관계없이 일정하다는 것까지 보여줄 수는 없었다.
1887년 마이켈슨과 몰리가 이를 밝혀냈다. 당시 빛은 파동이었다. 파동은 매개 물질이 있어야 한다. 수면파에는 물이, 음파에는 공기가 매개 물질이듯이 빛이 파동이라면 빛을 전달해주는 매개 물질이 필요하다. 당시 과학자들은 이것을 에테르라고 생각했다. 물론 에테르는 만질 수도 없고 냄새도 없는 아주 특이한 물질이라고 가정했다.

마이켈슨과 몰리는 바로 이 에테르의 존재를 확인하려고 했다. 하지만 에테르의 존재를 확인하는 대신 그들이 얻은 결론은 빛의 속도가 관측자에 관계없이 일정하다는 것이었다.

내 시간과 네 시간이 다르다

아인슈타인은 경험적으로 인식하기 힘든 시간의 상대성을 도입함으로써 특수상대성이론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림은 땅 위에 시계바늘을 놓아 시공간을 표현했다.
아 인슈타인은 이 결과에 주목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보자. 상대적 공간 개념은 경험적으로 누구나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 나와 내 옆에 있는 사람만 봐도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기 때문에 내가 그 사람에 대해서 상대적 공간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시간은 어떤가? 나와 내 옆에 있는 사람의 시간이 상대적일 수 있는가? 사람마다 시간이 다르다면 이 세상이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겠는가? 시간이 상대적이라는 생각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절대적인 양이어야 한다는 것이 훨씬 설득력 있어 보인다.

하지만 속도는 분자에 공간을, 분모에 시간을 변수로 가졌다. 분자에 있는 공간이 상대적이 된다면 분모에 있는 시간도 상대적이 돼야 이 둘을 조율해 빛의 속도를 일정하게 만들 수 있다. 시간의 상대성이 적용되지 않으면 빛의 속도가 일정하다는 사실이 성립되지 않는다.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의 핵심은 이것이 전부다. 그가 위대한 것은 이처럼 시간의 상대성을 도입했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상대적 시간과 상대적 공간을 결합시켜 시공간을 만들었다. 시간과 공간이 따로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시공간이 함께 변한다. 이제 관측자는 각자 다른 시공간 좌표계에서 존재하지만 관측자들이 경험하는 현상은 같은 물리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누구든 자신의 시공간 좌표계에서 빛의 속도는 일정하다.

그런데 공간뿐 아니라 시간마저 상대적이 되면 관측자에 따라 동시에 일어나는 사건이 달라진다. 어떤 관측자에게는 동시에 일어난 두 사건이 다른 관측자에게는 동시 사건이 아니다. 두 사건 중 자신에게 가까운 사건을 먼저 인지하게 돼 동시에 발생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물론 관측자가 빛의 속도에 비해 무시할 정도로 느리게 움직이고 있다면 이런 현상을 실제로 경험하기는 어렵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시간의 상대성을 경험하기 힘든 것도 이런 이유다. 하지만 만약 관측자가 빛의 속도에 가깝게 빨리 움직인다면 관측자는 두 사건을 서로 다른 시점에 발생한 것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예를 들어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우주로 여행하고 한 사람은 지구에 남아있다고 하자.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도 최초의 우주인이 탄생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그리 먼 미래도 아니다.
우주로 여행하는 사람은 자기 시계로 1분마다 지구로 송신해 자신이 잘 여행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지구에 남아있는 사람은 우주를 여행하는 사람으로부터 오는 신호를 포착해 시간을 기록한다. 두 사람의 시간은 똑같을까?

지구에 있는 사람은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분명히 우주에 있는 여행자는 1분마다 자신에게 송신을 하고 있을 텐데 지구 시계로 보니 1분 1초 간격이다. 만약 여행자가 빛에 거의 가까운 속도를 낼 수 있는 우주선을 타고 여행 중이라면 그 차이는 더 커진다. 여행자의 시간은 지구에 있는 사람의 시간보다 훨씬 천천히 가기 때문이다. 물론 우주에 있는 여행자의 시계는 제대로 가고 있다. 다만 그것을 측정하는 지구의 관측자에게 더 천천히 가는 것이다.
공간의 상대성도 마찬가지다. 여행자가 타고 있는 우주선의 길이를 지구에 있는 사람이 재면 지구에서 출발할 때 쟀던 길이보다 짧다. 물론 우주에 있는 여행자에게는 우주선이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다만 그것을 측정하는 지구의 관측자에게 더 짧게 보이는 것이다.

빛의 속도가 일정하다고 전제했을 뿐인데, 그래서 시공간이 함께 변한다는 결론을 도출했을 뿐인데, 결과적으로 시간이 느려지고 길이가 줄어드는 ‘이상한’ 결과가 나온다. 사람들이 특수상대성이론을 어려워하는 것도 이런 시간 지연과 길이 수축이 피부에 와 닿지 않기 때문이다.

멈춰 있어도 에너지는 있다

아인슈타인의 E=mc2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아인슈타인 하면 이 수식을 제일 먼저 떠올리는 사람도 많다. 그는 시간 지연과 길이 수축을 담은 논문을 발표하고 몇 달 뒤 세 쪽짜리 짧은 논문에서 이 수식을 유도했다. 특수상대성이론으로부터 물체의 운동방향으로 움직이는 막대가 줄어들고, 움직이는 시계가 느려지며, 질량과 에너지가 같은 종류라는 결론이 도출됐다.

원래 아인슈타인이 유도한 식은 m=E/c2였다. 질량 m인 물체가 빛의 형태로 복사에너지 E를 방출한 후 물체의 질량이 E/c2만 큼 감소한다는 의미였다. 이로부터 아인슈타인은 물체의 운동에너지뿐 아니라 물체가 정지해있을 때의 질량인 정지질량으로부터 얻어지는 정지질량에너지도 같이 더해줘야 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 때 더해지는 정지질량에너지가 바로 E=mc2이다.

이 식을 해석하면 질량을 가진 물질은 에너지와 서로 상호변환이 가능하다는 의미가 된다. 게다가 빛의 속도의 제곱이 곱해지는 덕분에 엄청나게 큰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원자력에너지를 얻는 기본 원리가 여기서 나왔다. 만약 핵반응 전후에 1g의 물질이 손실돼 이것이 에너지로 바뀐다면 매달 300와트(W) 정도를 소비하는 30만 가구가 1년 동안 쓸 수 있는 무지막지한 양이 된다.

한편 물체의 운동 속도가 커질수록 질량이 점점 늘어난다. 만일 물체가 빛의 속도로 움직인다면 질량이 무한대가 된다. 그럼 정작 빛 자체는 어떻게 되는가? 빛을 입자로 보면 광자는 자신의 속도로 움직이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광자가 자신의 속도로 움직이면 질량이 무한대가 돼야 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광자는 정지질량을 0으로 규정해 무한대로 발산하는 문제를 막는다. 또 자연계에는 중력, 전자기력, 약력, 강력의 네 가지 기본 힘이 있는데, 이를 매개하는 글루온, W보손, Z보손, 중력자 같은 매개 입자들도 빛의 속도로 움직이기 때문에 정지질량을 0으로 정한다.

중력까지 설명해야 일반적 이론

에셔가 1947년 발표한 '다른세계'(Other World)라는 제목의 석판화. 공간과 공간이 맞닿아 3차원 공간 개념이 무너졌다.
이제 일반상대성이론으로 넘어 오자. 아인슈타인은 왜 일반상대성이론을 만들었을까?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특수상대성이론은 상대성에 대한 ‘특수한’ 이론이고, 일반상대성이론은 상대성에 관한 ‘일반적’ 이론이다.
특수상대성이론은 관측자들이 서로 등속도로 움직인다는 특수한 환경을 가정했다. 하지만 실제로 일상생활에서 항상 같은 속도로 움직인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모든 운동은 가속도 운동이다. 지구에 사는 우리는 싫든 좋든 중력가속도에 따라 가속운동한다.

따라서 일정하게 가속하는 좌표계의 예로 중력이 작용하는 좌표계를 생각할 수 있다. 아인슈타인은 이를 통해 중력을 새롭게 설명하려고 했다. 그래서 일반상대성이론을 ‘아인슈타인의 중력이론’으로 부르기도 한다.
특수상대성이론과 마찬가지로 일반상대성이론에서도 빛보다 빠른 것은 없다는 전제는 계속 유지된다. 다만 관성을 중력과 같은 것으로 해석한다. 그 이전까지 관성은 작용하지만 실제로 존재하지는 않는 가짜 힘이었다.

예를 들어 버스가 정지해있거나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고 있을 때 버스의 손잡이는 연직선상에 있다. 그런데 만약 버스가 출발해 점점 속도를 내는 가속도 운동을 한다면 버스 손잡이는 뒤로 쏠릴 것이다. 뒤를 아무리 살펴봐도 잡아당기는 힘을 작용할만한 대상이 없는데 말이다. 그래서 이런 관성을 가짜 힘이라고 한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은 관성을 중력으로 해석했다. 그리고 중력은 물질로 결정 되며 주위의 시공간을 휘게 한다고 생각했다. 이처럼 일반상대성이론은 이전의 개념과 너무 달라 우리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수학적으로도 상당히 복잡하고, 특수상대성이론과 다른 비유클리드 기하학인 리만기하학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특수상대성이론과 일반상대성이론의 공통점은 빛의 속도가 모든 물질이 가질 수 있는 한계 속도라고 전제하는 것이다.

빛은 직진하면서 휜다?

특수상대성이론에서는 빛은 정지질량이 없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중력이나 만유인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하지만 일반상대성이론에서는 좀 다르다. 일반상대성이론에서는 중력이 시공간의 곡률로 표현된다. 시공간의 곡률이란 시공간이 얼마나 휘어져 있는지 굽은 정도를 나타내는 양이다. 얇은 고무판 위에 무거운 물체를 올려놓으면 축 처진 모양이 되듯이 큰 별 주위는 별의 중력 때문에 시공간이 굽는다.

굽은 고무판 위에 작은 구슬을 굴리면 그 구슬이 굽은 면을 따라 굴러가듯이 큰 별 주위에서는 별의 중력에 의해 물체가 끌려간다.
굽은 시공간에서는 어떤 물체도 예외일 수 없다. 빛도 마찬가지다. 이 말은 빛이 직선으로 진행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빛은 직선으로 진행한다. 다만 빛이 움직이는 시공간이 굽었기 때문에 빛도 따라서 굽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빛이 중력의 영향을 받는다고 할 수 있다.

아인슈타인이 일반상대성이론으로부터 이런 결과를 끌어냈을 때 당시 과학자들은 반신반의했다. 3년 뒤 영국의 천문학자 에딩턴이 일식 때 별빛이 태양의 중력에 끌려 정말로 휜다는 것을 밝힌 후에야 그 진가를 인정받았다.
또 태양 주위를 일주하는 수성의 세차운동 주기를 뉴턴의 운동법칙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지만 일반상대성이론의 굽은 공간에서 수성이 운동한다고 고려하면 완벽하게 일치했다. 중력이 매우 강한 천체 주위에서는 빛이 휘어져 멀리 있는 밝은 별의 상이 2개 이상 보이는 중력렌즈 현상도 일반상대성이론을 뒷받침해주는 실험적 증거다. 중력이 아주 강한 블랙홀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특수상대성이론과 마찬가지로 일상생활에서 일반상대성이론을 느끼기는 어렵다. 하지만 우주와 같은 거시세계, 즉 중력이 강한 영역의 물리세계에서는 일반상대성이론이 유일한 해설가다.

김성원 교수는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한 후 KAIST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5년부터 이화여대 과학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1989~1990년에는 미국 캘리포니아공대 교환교수를 지냈다. 블랙홀과 타임머신, 과학교육, 영재교육 등에 대해 다수의 논문과 저서를 집필했다. 일반상대성이론과 우주론이 그의 연구 분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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